소피스트는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그룹으로, 수사학, 미덕, 인식론에 대한 가르침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주로 실용적인 지식과 설득의 기술에 관심이 있었고 진리와 도덕성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고 믿었다. 소피스트에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프로디쿠스와 같은 저명한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며 수사학 및 대중 연설 교사로 봉사했다. 그들은 종종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다른 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그들은 그들을 협잡꾼으로 보고 회의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를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피스트들은 특히 수사학과 교육 분야에서 고대 그리스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설득의 기술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과 실용적인 기술 및 실제 지식에 대한 강조는 현대 교육 및 의사소통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소피스트 (Sophists) : 지혜롭고 능숙한 사람 / 수사학, 웅변, 설득의 기술 설파 / 궤변론
소피스트라는 용어는 원래 지혜롭고 능숙한 사람을 뜻했지만, 우리가 서술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이 말이 방랑하면서 생각하고 말하는 기술을 돈받고 가르치며 젊은이들을 정치 생활에 준비시키는 전문 교사들에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소피스트라는 이름은 점차 비난의 말이 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소피스트들이 돈을 받았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보수적 요소를 모욕한 몇몇 후기 소피스트들의 급진주의 때문이었다. 소피스트들은 뜨거운 정열을 갖고 자신들이 택한 일에 전념했다.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가 한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묘사한다. “만일 그대가 나와 교제한다면, 바로 그날 그대는 올 때보다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이런 일을 있게 할 것이냐고 그에게 질문할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그가 내게 올 때, 배우고자 하는 바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공적인 일에나 개인적인 일에서 신중함입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가장 훌륭하게 다스리는 법을 배울 것이며, 국가의 일에서 가장 훌륭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는 전문 직업에 적용하기 위하여 변증학과 문법과 수사학과 웅변을 완벽하게 연마해야 했다.
소피스트들은 매우 실제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런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이론적 탐구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그들은 또한 도덕적·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리하여 윤리학과 국가론을 좀 더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연구하는 데 강력한 힘을 쏟았다. 시대의 도덕적 진지성이 쇠퇴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성공하려는 욕망으로 대체되면서, 후기 소피스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제자들을 유능하게 만들려는 열망에 종종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제 그들의 교훈의 목표는 공정한 수단이든지 비열한 수단이든지 상대를 격파하고, 형편없는 대의를 훌륭한 대의처럼 보이게 만들고, 온갖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상대를 혼동시킨다. 참으로 이제는 “궤변”(sophism)과 “궤변론”(sophistry)이라는 말이 그런 오류 추리를 가리킨다. 상대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되었다.
인식론 : 인간의 사유 능력의 한계 / 객관적 진리 아닌 주관적 의견 / 상대적 진리의 응용 가능성과 실행가능성
소피스트 시대는 일차적으로 도덕적·종교적 개혁의 시대가 아니었다. 이는 18세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과장한 데서 비롯한 잘못된 견해이다. 반면에 무엇보다 궤변론은 자연 철학자나 우주론자의 역설적 결론에 대한 항거이다. 소피스트들의 관심은 그리스 철학의 자연철학자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다양한 의견들에 의한 지식의 문제로 쏠렸다.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선배들의 의견 불일치는 인간의 사유 능력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사유 능력은 우주론자들이 제창한 문제들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철학에 의해 상당히 육성된 시대의 비판적 정신이 철학에 반동하기 시작했고,
형이상학적 사변의 일시적인 경시에 이르렀다. 사유를 저울에 달아 보니 함량 미달이었다는 것이다. 철학은 자기비판적이게 된다. 실재의 본질에 관한 문제에서 해답이 일치하는 두 철학자가 없는 것 같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한 사람은 실재의 본질이 물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공기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불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흙이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그것들 전부라고 한다. 한 사람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은 변화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변화가 없다면, 지식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하여 무엇을 예측할 수 없다. 어찌 일자가 다자(多者)가 될 수 있는가?
만일 만물이 변한다면, 지식도 있을 수 없다. 지속하는 것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에 대하여 무엇을 예측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몇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사물들이 우리의 감관에 영향을 미치는 한에서만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면, 다시금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물의 본질이 우리의 파악 능력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의 결론은, 우리가 우주의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사람의 지성이 인식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진리는 소피스트에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소피스트 이전의 사상가들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가정했다. 그들은 모든 비판적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지성을 비판하는 것을 망각했다. 이제 소피스트들은 인식 주체에 빛을 비추면서, 지식이 특정 인식자에 의존하며, 그에게 참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 그에게 참되며, 객관적 진리란 없고 다만 주관적 의견이 있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가르쳤다.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적인 인간 척도(homo mensura) 론은 개인의 양식적 판단을 지지하며, 철학자들(특별히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역설적 결론을 거부하는 이론이다. 프로타고라스의 공식에서 언급되는 “인간”은 유적 인간(genus homo)이 아니라 개인이다. 개인은 인식의 문제에서 자신에게 법칙이 된다. 이 공식에 따르면, 종종 서로 대립하는 개인들의 의견은 모두 참될 수 있다. “어느 것도 ‘저것이 아니라 이것’이지 않다.” 두 개의 대립적 진술이 다 참될 수 있다. 각 진술은 그 진술을 선언하는 개인의 주관적 기질에 상대적이다. 따라서 소피스트의 일은 유일한 진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대립하는 진술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두 개의 서로 모순적인 진술이 똑같이 참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하나가 다른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이 말은 아마 하나가 다른 것보다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정상적인 눈의 시력은 황달에 걸린 눈의 시력보다 믿을 만하다. 프로타고라스는 정상적인 것에 호소하면서, 모든 표준을 부인한 다음에 진리의 기준을 다시 회복하는 우를 범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상충하는 의견이 모두 참되다고 확언함으로써 — 물론 상충되는 의견 가운데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정상적이다 — 그로 인하여 제기된 문제를 해결한 반면, 고르기아스(Gorgias)는 진술 가운데 참된 것은 없다는 극단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자연 혹은 비존재자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에서, 전적으로 부정주의적 철학을 세 개의 진술로 표명한다:
(1) 존재하는 것은 없다.
(2) 설사 무엇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3) 그것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다 해도 이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
소피스트의 인식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며 회의적이지만, 적어도 그 인식론의 몇몇 대표자들에게는 긍정적 측면을 또한 갖고 있다. 소피스트들이 사용하는 변증적 논거는 참된 지식을 수립하기보다 상대를 논박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총명함과 독창성에 의하여 플라톤의 변증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위하여 길을 닦았다. 소피스트의 다른 긍정적 공헌은 지식의 실용적 측면을 인정한 데 있다. 그들은, 절대적인 이론적 진리란 획득 불가능하지만 개인이 성취한 상대적 지식은 통상적인 인생사의 행동에 실제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피스트들은 개인에게 상대적인 진리의 응용 가능성과 실행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최근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부흥한 하나의 입장을 정식화했다.
윤리학 : 법률 도덕 제도는 '인습' / '자연'과 '인습'의 구분 / 도덕 기준과 행동 규칙은 인습과 의견 일치의 산물
소피스트의 인식론을 특징짓는 주관주의와 상대주의는 윤리적 견해에서도 나타난다. 이론적 회의론으로부터 윤리적 회의론까지는, 인간이 행동의 문제에서 자신에게 법칙이 된다는 견해까지는 먼 길이 아니다. 만일 지식이 불가능하고, 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이 불가능하다면, 보편적인 옳고 그름이 없으며, 양심은 단지 주관적인 것이다. 소피스트의 윤리적 논거는 인식론적 논거와 비슷하다. 자연철학자들의 상충하는 우주론적 사색이 소피스트들로 하여금 이론적 지식의 가능성을 의심하게 했듯이, 여러 나라의 관습과 도덕과 전통의 다양성은 그들로 하여금 행동과 사회적 행위의 어떤 절대적 객관적 기준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했다. 이런 극단적인 윤리적 함축 의미는 프로타고라스(기원전 약 490년에 출생)나 고르기아스와 같은 구(舊) 소피스트들이 이끌어낸 게 아니다.
프로타고라스의 사회적·정치적 철학은 급진적이지도 혁명적이지 않다.
확실히 그는 법률과 도덕을 포함하여 모든 기성 제도가 단지 인습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도덕적 질서가 있을 수 있으려면, 어떤 법적·도덕적 규칙을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도덕적·사회적 인습은 사람을 짐승의 수준을 넘어서게 하고, 사람을 사회적 동물로 변화시킨다.
고르기아스도 지식 분야에서는 급진적 회의론을 취하긴 하지만, 도덕에서는 프로타고라스의 보수주의를 공유했다. 도덕과 법률에 한 좀 더 부정적인 접근법은 플라톤의 대화록에서 연설가들로 나오는 트라시마코스, 칼리클레스, 에우티데모스를 포함하는 젊은 급진파 가운데 성행했다. 그러나 그들도 완전한 윤리적 허무주의를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도덕이 인습에 불과하다. 도덕은 자기들의 추종자에게 자신의 요구를 강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한다. 도덕 규칙은 “자연”과 대립한다. 대체로 소피스트들이 “자연”과 “인습”의 구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분은 후대의 그리스 사상 발전에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이 구분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도덕 기준과 행동 규칙은 사물의 본성과 구조에 근거하는가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인습과 임의적 의견 일치의 산물인가?” 소피스트들은 후자가 맞다고 생각했다. 어떤 소피스트들에 따르면, 법칙은 다수의 약자들이 강한 자, “최고의 사람”을 억제하고, 가장 적합한 자가 그 몫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려고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법칙은 자연적 정의의 원리를 침범한다. 자연권은 강자의 권리이다. 다른 소피스트들에 따르면, 법칙은 일종의 계급 입법이다. 그것은 소수의 강하고 특권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만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법칙을 강요하는 것은 강자에게 유리하게 하려 함이며, 이는 그가 더욱 유리하게 그 법칙을 깨뜨리려는 것이다.
소피스트에 대한 평가 - 자연 보다 인간에 관심 / 보편적 요소 인정 실패 / 궤변론 / 논리적 오류와 궤변 사용 / 철학이 지식의 기준 살펴야 함
몇몇 후기 소피스트들의 허무주의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적대적인 비판 때문에, 사상사에서 소피스트 운동의 중요성은 오랫동안 잘못 판단되었다. 헤겔과 그로트(Grote)가 이 사상가들에 대하여 공정한 평가를 내려려고 시도한 이후에야, 그들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이 이루어졌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선한 것도 있었고 악한 것도 있었다.
반성과 비판은 철학과 종교와 도덕과 정치와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좀 더 건전한 생각을 낳는 데 필수 불가결하다. 이성에 대한 호소는 그 자체로 칭찬할 만했지만, 잘못은 궤변론이 건설적인 방법으로 이성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키케로가 말했듯이, 소피스트들은 철학을 하늘에서 인간의 거처로 끌어내렸고, 외부 자연으로부터 인간 자신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들에게는 인류에 대한 엄밀한 연구 대상은 구체적인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에게서 보편적 요소를 인정하는 데 실패했다.
나무는 보았지만 숲은 보지 못했다.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보지 못했다. 궤변론은 인간의 판단에 있는 차이점을 과장했고, 일치점을 무시했다. 또한 감관의 현혹성을 너무 많이 강조했다. 인간의 지식과 행동에서 우연적·주관적·순수 개인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소피스트들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진리와 원리를 구성하는 객관적 요소를 바로 평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식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좀 더 깊은 인식론 연구를 필요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사색가들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지성의 능력을 순진하고 독단적으로 가정했다. 소피스트들은 확실하고 보편적인 지식의 가능성을 부인할 때, 철학으로 하여금 사유 과정을 검토하도록 강요했고, 그래서 지식론을 위한 길을 열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논리적 오류와 궤변을 사용하면서, 올바른 사유 법칙에 대한 연구를 필요한 것으로 만들었고 논리학의 탄생을 재촉했다.도덕적 지식과 관행에 관해서도 동일한 말을 할 수 있겠다.
개인의 양심에 대한 호소는 건전했다.도덕은 관습을 그저 맹목적이고 생각 없이 추종하는 데서부터, 반성적인 개인적 선택의 단계로 격상되었다. 하지만 단순한 주관적 의견과 이기심에 대한 호소가 될 때에는, 도덕은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다. 사유의 독립은 쉽게 지적·도덕적 무정부 상태로 퇴보한다. 개인주의는 순전한 이기심으로 퇴보한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소피스트주의는 공헌했다. 옳고 그름, 공적·사적 정의의 일반적 개념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윤리학과 정치학에 대한 좀 더 깊은 연구를 필요하게 만들었다. 이 연구는 곧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다. 전체 소피스트 운동의 큰 가치는 여기에 있었다.
이 운동은 사유를 각성시키고, 철학과 종교와 관습과 도덕과 그것들에 입각한 제도에게 이성에 비추어 자신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지식의 가능성을 부인할 때, 지식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일을 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철학이 지식의 기준을 살피도록 강요했다. 전통적인 도덕을 공격할 때는, 도덕이 회의론과 허무주의에 반대하여 자신을 옹호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적 원리를 발견하라고 요구했다. 전통적인 종교적 신념을 공격할 때는 좀 더 일관되고 순수한 신 개념을 발전시킬 필요를 사상가들에게 강요했다. 그리고 국가와 법률을 비판할 때는, 철학적인 국가론의 발전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철학이 좀 더 견고한 토대 위에 서고, 제일 원리로 돌아가도록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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