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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

플라톤의 철학: 이데아론과 질료의 상호작용

by 건강맨이야Ho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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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철학 이데아론과 질료의 상호작용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 세계의 사물들이 갖는 공통적인 본질적 성질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데아는 사물들의 본질을 포괄하거나 결합하는 개념으로, 사물들의 보편적 형상에 해당한다. 이데아는 지성 바깥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며, 사물들의 원초적이며 영원한 초월적 모형이다. 이데아는 많은 대상 혹은 모사가 있지만, 한 집단의 사물들에게는 하나의 이데아만 존재하며, 독립된 형상 혹은 이데아의 다양성과 상이성은 무한하다. 이데아들은 잘 조직된 세계 혹은 합리적 우주를 형성하며,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로, 다른 모든 이데아의 원천이 된다. 통일성은 다양성을 포함하며, 이상적 세계에서는 다양성 없는 통일성이 없고, 통일성 없는 다양성이 없다. 플라톤의 이론은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현실 세계의 사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이해와 개념 탐구

이데아 혹은 개념은, 많은 개별자에 공통적인 본질적 성질을 포괄하거나 결합한다. 사물들의 본질은 그들의 보편적 형상에 있다. 보편적 본질의 이론은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이데아를 단지 정신적 과정으로 고찰하기가 쉽다. 만일 개별자만이 존재한다면, 지성 바깥에 이데아나 모형에 일치하는 것이 없다. “나는 한 마리의 말을 보지, ‘말 됨’(horseness)을 보지 않는다”라고 안티스테네스가 말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이런 견해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이데아나 형상은 인간의 지성이나 심지어 신의 지성 안에 있는 단순한 사유가 아니다. 참으로 신적 사유는 이데아를 향해져 있다. 그는 이데아를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실체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 이데아는 실체, 실재적 혹은 실체적 형상, 사물보다 앞서 존재하고 사물과 독립하여 존재하고 따라서 사물들이 종속되는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물의 원초적이며 영원한 초월적 모형이다.


우리가 파악하는 개별 대상은 영원한 모형들에 대한 불완전한 반영이다. 개별자는 생겼다 사라질 수 있지만, 이데아나 형상영원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왔다가 갈 수 있지만, 사람의 모형은 영원하다. 많은 대상 혹은 모사(模寫)가 있지만, 한 집단의 사물들에게는 하나의 이데아만 존재한다. 독립된 형상 혹은 이데아의 다양성과 상이성은 무한하며, 따라서 너무 비천하거나 부질없어서 그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없다. 사물들, 관계들, 성질들, 행동들, 가치들의 이데아가 있다. 탁자와 침대와 의자의 이데아, 작음과 큼과 동일함의 이데아, 색과 냄새와 음색의 이데아, 건강과 쉼과 운동의 이데아, 아름다움과 진리와 선의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 혹은 원형은 무수할지라도, 혼란하거나 무질서하지 않다. 그것들은 잘 조직된 세계 혹은 합리적 우주를 형성한다.
그 이상적 질서는 상호 관련되고 연관된 유기적 통일체를 형성한다. 이데아들은 논리적 순서로 배열되며, 최고의 이데아 즉 선의 이데아 아래 포섭된다. 이 선의 이데아는 다른 모든 이데아의 원천이다. 이 이데아는 가장 높다.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이데아가 없다. 참으로 실재적인 것과 참으로 선한 것은 동일하다. 선의 이데아는 로고스 즉 우주적 목적이다. 그러므로 통일성은 다양성을 포함한다. 예지계 혹은 이상적 세계에는 다양성 없는 통일성이 없고, 통일성 없는 다양성이 없다. 다양성과 다수성에 대한 플라톤의 강조점은 파르메니데스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플라톤은 우주를 이데아의 논리적 체계, 하나의 보편적 목적선의 이데아에 의하여 지배되는 유기적 통일체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합리적이며 유의미한 전체이다. 선의 의미는 감관으로 파악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관은 선의 불완전하고 덧없는 반영만을 파악하고, 완전하고 영구적인 전체로서 선의 관찰에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을 발휘하여 우주의 내적 질서와 연관을 이해하고, 논리적 사유로 우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기능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그의 가장 독창적인 철학적 업적이다. 물론 피타고라스의 수(數)신비주의, 파르메니데스의 영원한 존재,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론, 아낙사고라스의 질적 원자론, 무엇보다 소크라테스의 개념론에 의하여 이데아론을 위한 길이 마련되었지만, 완전하게 표현된 형이상학적 입장으로서 보편자론은 플라톤의 대화편에 아주 분명하게 서술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친 단순화를 범하지 않고서 몇 가지 명확한 진술로 그것을 요약할 수 있겠다.


(1) 추상적 개념에 상응하는 대상으로서 형상 혹은 이데아는 실재하는 실체이다.

플라톤의 형상은 단지 소크라테스적 개념의 구체화 혹은 실체화이다. 엘레아학파의 존재의 성질을 부여받은 것이다.

(2) 형상은 집·개·사람 등 사물들의 집합의 형상, 희거나 둥근 것 등 성질의 형상, 선·아름다움 등 가치의 형상을 포함하여 아주 다양하다.


(3) 형상은 시공간의 구체적 개별자와 구별 가능한, 추상적 실체의 영역, “이데아의 천국”에 속한다. 형상과 그 표본의 구분은 일반적으로 플라톤적 이원론으로 언급된다.


(4) 형상들은 실재성과 가치의 정도에서 개별자보다 우월하다. 형상들은 실재이며, 개별자들은 그것의 단순한 현상이다. 형상은 모형 혹은 원형이며, 개별자는 그것의 모사이다.


(5) 형상은 비정신적이며 인식하는 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속한다.

형상은 사람의 지성이나 심지어 신의 지성에 거주하는 “관념”이 아니다. 형상이 단지 “우리의 지성 안에 있는 사유”에 불과하다거나 공통의 술어를 갖고 있는 개별자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제안은 플라톤에 의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이름이란 그것이 지칭하는 “공통적 본질”이 없을 경우 무의미하다는 근거에서 아마 기각될 것이다. 형상은 정신적인 것도 물리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실재한다.


(6) 형상은 비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비시간적인 것이므로, 영원하며 불변적이다.


(7) 형상은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위계를 형성한다.
이 위계에서 높은 형상은 낮은 혹은 종속된 형상과 “교류”한다.


(8) 형상은 감관이 아닌 이성에 의하여 파악된다.
물론 감관은 그것이 구현하는 형상의 파악을 위한 기회와 자극을 제공하긴 한다.


(9) 마지막으로, 개별자와 그것이 예증하는 형상의 관계는 “관여”(participation)라고 부른다.
공통의 술어를 가진 모든 개별자는 상응하는 형상에 관여한다. 개별자는 다양한 형상에 동시적으로 관여하며, 변화를 겪을 때 연속적으로 상이한 형상에 관여한다. 관여론은 형상론에 심각한 난점을 제시한다. 플라톤은 이 난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위의 진술들에 요약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플라톤적 실재론이라고 언급되는 철학적 입장은 플라톤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대표자를 두었다. 하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떨쳤던 시대는 중세였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와 질료: 현실과 실재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이제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와 소위 현실 세계의 관계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연의 개별 대상들은 이데아의 모사이다. 이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순수하고 완전하고 변화 없는 원리들은 어떻게 감관의 불완전하고 영원히 변화하는 세계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플라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다른 원리를 가져온다. 이는 이데아와 정반대 되는 것이며 이 원리 때문에 감각적 실존은 불완전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적 “질료”라고 부르는 이 두 번째 원리는 현상계의 기초이다. 그 자체로서 이 두 번째 원리는 형상들이 새겨지는 원재료를 제공한다. 질료는 사멸 가능하고 불완전하고 비실재적이다. 이는 비존재이다. 지각된 세계가 어떤 실재성, 형상, 아름다움을 갖고 있든지 간에, 그것은 이데아 때문이다.

어떤 플라톤 해석가들은 이 플라톤적 “질료”를 공간으로 파악한다. 어떤 이들은 이를 형상이 없고 공간을 채우는 덩어리로 파악한다. 플라톤은 이데아 말고 감관의 세계 혹은 자연을 설명할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감관의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변화 없는 이데아적 영역보다 낮은 실재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데아의 원리에 저촉되지 않는 이 기체(基體)는 모든 성질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형상이 없고 정의될 수 없고 지각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자연은 이데아 세계와 비존재 혹은 질료의 상호 작용 때문에 존재한다. 프리즘을 관통하는 광선이 많은 광선으로 나누어지듯이, 이데아는 질료에 의하여 많은 대상으로 나누어진다. 이 형상 없는 무엇은 비존재인데,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런 게 아니라 낮은 현존 질서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비존재라는 용어는 하나의 가치 판단을 표현한다. 감성계는 형상을 띠고 있는 한 어느 정도의 실재성을 분유(分有)한다. 플라톤은 두 영역의 관계의 본질을 아주 엄밀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데아들이 사물들이 소유하는 모든 실재성의 원인인 게 분명하다. 사물들은 그 안에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들은 이데아에 관여한다. 동시에 비존재 즉 기체는 동일한 이데아를 구체화하는 많은 상이한 대상들의 다양성과 불완전에 대한 원인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원리가 있다. 두 원리 가운데 이데아는 참된 실재성, 모든 사물이 그 형상과 본질을 갖게 하는 가장 큰 가치가 있는 것이며 우주 내의 법칙과 질서의 원리이다. 반면에 다른 요소 즉 질료는 부차적 원리로서, 무미건조하고 비이성적이며 완강히 반항하는 세력이며, 이데아의 반항적인 종이다. 그런데 이 질료는 불완전하게나마 이데아의 인상(印象)을 취한다. 질료는 이데아와의 관계에서 친구이자 원수이며, 보조물이자 방해물이며, 물리적·도덕적 악의 근거이며, 변화와 불완전의 근거이다. 이데아의 세계가 선의 원천이므로, 비이데아적인 것이 악의 원인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이 체계의 이 부분을 이름 붙여야 한다면, 이원론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데아는 사물의 최고 원리이며, 질료는 열등하고 부차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어떤 것도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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