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의 개념과 우주에 근본적인 질서가 있음을 암시하는 조화와 이성의 법칙을 믿었다. 그는 우주를 불로 상징화한 일정한 흐름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모든 것이 반대의 균형이며 성장과 변화를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심리학과 윤리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보편적 유전학은 우주의 기본 원리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적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우주는 끊임없는 변화 상태에 있으며 모든 것은 반대의 균형이다. 이러한 반대 세력은 성장과 변화에 필요하며 투쟁은 이 과정의 고유한 부분이다. 보편적 유전학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은 오늘날 철학자와 학자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고 토론되고 있다.
근본적 사상 : 우주는 끊임없는 변화의 상태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475년)는 에페소스에서 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민주주의에 극단적인 경멸감을 보이며, 평생 강경한 귀족주의자로 지냈다. 그는 진지하고 비판적이고 비관론적이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에 상관하지 않고 독단적이고 교만했으며 흠잡기를 좋아했다. 그는 헤시오도스와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와 심지어 호메로스를 비판적으로 말하며, 독학한 것을 자랑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박식은 지성을 훈련시키지 못한다. 그랬더라면, 헤시오도스와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는 박식하여 지혜로웠을 것이다.” 그의 문체는 모호한데, 아마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 같다. 실제로 그는 “모호한 사람”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혜롭고 독창적인 말을 많이 구사한, 설득력 있는 저술가였으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제목 「자연론」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그의 작품은 현재 단편으로만 남아 있으며, 아마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 같다: 물리적·윤리적·정치적 부분. 그가 썼다고 하는 「서간」은 가짜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가르침에서 근본적인 사상은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우주란 끊임없는 변화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물이 계속하여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보편적 유전 - 생명적 원리 & 영혼의 본질
단절 없는 활동이라는 개념을 표시하기 위하여,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이 아는 가장 활발한 실체, 결코 쉴 것 같지 않은 것 즉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을 자신의 제일 원리로 선택한다. 때때로 그는 이 불을 증기나 호흡이라고 부르곤 했으며, 이를 유기체의 생명적 원리이며 영혼의 본질이라고 간주한다. 몇몇 해석가들에 따르면, 불의 원리는 쉬지 않는 활동이나 과정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물리적 상징에 불과하며, 그 자체는 실체가 아니며 사실상 모든 실체의 거부이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가 그렇게 멋진 요점으로 추론했을 법하지 않다. 그는, 양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하나의 원리를 갖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불은 이 요구를 만족시킨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은 선배들의 항구적 기체(基體)와 다르다. 그것은 한결같이 다른 사물로 변형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물로 변하며, 그다음에 흙으로 변하고, 흙은 다시 물과 불로 변한다.
“왜냐하면 위로 가는 길과 아래로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불로 바뀌고, 불은 만물로 바뀐다. 물건을 금으로 바꾸고 금을 물건으로 바꾸는 것처럼 말이다.” 사물들은, 우리가 그 안에서 끊임없는 운동을 파악하지 못하며, 그것들이 한편으로 잃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 얻기 때문에 항구적인 듯이 보인다. 태양조차도 뜰 때는 밝아지고 질 때는 꺼지면서, 매일 새롭다.
대립자와 그들의 연합
시원적 통일 자체가 한결같은 운동과 변화 가운데 있다. 그것의 창조는 파괴이며, 그것의 파괴는 창조이다. 그 통일이 다른 어떤 것이 될 때, 즉 불에서 물이 될 때, 불은 새로운 존재 방식에서 사라진다. 만물은 자신의 대립자로 변화하며, 그러므로 만물은 대립적 성질의 연합이다. 지속적 성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것도 그것의 성질 때문에 항구적인 게 아니다. 만물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적 과정은 하나의 조건에서 반대의 조건으로 나아가는 이행이며, 이런 의미에서 만물은 자신 안에서 대립자와 연합한다. 그런 대립만이 세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령, 음악의 화음은 높은 음과 낮은 음의 조합에서, 즉 대립자의 연합에서 기인한다. 세계는 투쟁에 의하여 다스려진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 만일 투쟁이나 대립이 없다면, 세계는 정체되고 죽을 것이다. “한 방울의 물약도 휘젓지 않을 때 그 성분들로 분해된다.” 대립과 모순은 연합되며, 조화는 그 결과이다. 참으로 자신의 고유한 대립과 모순을 가진 운동이나 변화가 없는 질서는 있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대립은 우주적 원리에서 모두 화해를 이룰 것이다. 세계는, 이성이기도 한 시원적인 불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한 것과 나쁜 것은 동일하다. “삶과 죽음, 깨어남과 잠듦, 젊음과 노년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후자는 변화하여 전자가 되며, 전자는 다시 후자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신에게는 만물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의롭다. 왜냐하면 신은 만물을 마땅히 있어야 할 그대로 질서정연하게 만들고, 전체의 조화 가운데 만물을 완전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것은 부정의하고 어떤 것은 정의롭다고 잘못 주장한다. 조화는 대립자의 연합이며, 동시에 변화의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그 과정보다 높은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변화의 과정과 그 법칙은 하나다.
조화와 이성의 법칙 - 사물 안의 이성 (로고스) , 이성적 원리
우주적 과정은 우연이나 변덕이 아니라, “고정된 척도”와 일치한다. 혹은 오늘날 우리의 표현대로, 법칙에 의하여 지배된다. “사물의 이 한 가지 질서는 신들의 질서도 아니며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고정된 척도에 따라 켜지고 고정된 척도에 의하여 꺼지는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때때로 사물의 질서를 운명 혹은 정의의 일이라고 말하며, 그것에 의하여 필연성의 개념을 자신의 변화 철학에 도입한다.
모든 변화와 모순의 한가운데에서, 지속하는 혹은 동일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모든 운동과 변화와 대립의 기초를 이루는 냉혹한 법칙이다. 이는 사물 안의 이성 즉 로고스이다. 그러므로 제일 원리는 이성적 원리이며, 그것은 살아 있고 이성을 부여받았다. “만물을 통하여 만물을 지도하는 지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지혜롭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한다. 그가 지성을 의식적 지성으로 파악했는지, 비인격적인 합리성으로 이해했는지 우리는 절대적 확실성을 갖고 대답할 수 없다. 로고스 이론은 후대 철학에 미친 그 영향에서 두 가지 방법으로 모두 해석되지만, 아마도 후자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좀 더 많다.
심리학과 윤리학 - 도덕적 행위, 보편적 이성, 윤리적이란 이성적인 삶을 사는 것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우주론 위에 자신의 심리학과 윤리학을 둔다. 사람의 영혼은 보편적 불의 일부이며, 그것에 의하여 보호받는다. 우리는 그 불을 호흡하며, 우리의 감관을 통하여 그것을 받아들인다. 가장 건조하고 따뜻한 영혼은 최고의 영혼인데, 이는 우주적인 불의 영혼과 가장 비슷하다. 감각 지식은 이성보다 열등하며, 눈과 귀는 형편없는 증인이다. 성찰 없는 지각은 숨겨진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하지 못한다. 이 진리는 이성으로만 분간할 수 있다. 인간의 지배적 요소는, 신적 추론과 비슷한 영혼이다. 인간은 도덕적 행위에서 자신을 보편적 이성에 종속시켜야, 만물에 스며 있는 법칙에 종속시켜야 한다. “마치 도시가 법률을 고수하는 것처럼 지성을 가지고 말하는 자들은 만물 안에 있는 보편적 요소를 굳게 붙잡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더욱 굳게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법칙은 신적인 법칙에 의하여 자라기 때문이다.” 윤리적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삶을 영위하고, 이성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며 온세계에 동일하다. 그런데 “이성은 보편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독특한 지성을 갖고 있는 듯이 살고 있다.” 도덕성은 법칙에 대한 존중, 자기 훈련, 정념의 통제를 뜻한다. 도덕이라는 것은 이성적 원리에 의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의 저술에서 뽑은 다음의 발췌문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윤리학의 높은 이상론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성벽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듯이 자신의 법칙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성품은 사람의 수호신이다.” “방종은 화재보다 먼저 꺼야 할 것이다.” “정념과 싸우는 것은 힘들다. 왜냐하면 정념은 영혼을 희생시켜서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사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한 사람이 매우 훌륭하다면 만 명과 진배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많은 사람이 나쁘고 소수가 선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음유 시인을 따르고
군중을 스승으로 삼고” “짐승처럼 배를 채우는” 대중이라는 낮은 대중관을 갖고 있었다. 삶은 기껏해야 유감스러운 게임이다: “인생은 밤중의 등불처럼 켜졌다가 꺼진다.” 대중 종교에 대해서도 그는 그저 경멸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들은 진흙을 씻어내려고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피로써 자신을 정화한다. 어떤 사람이 그 짓을 하고 있는 그를 본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사람이 집과 이야기하듯이 그들은 이 신상들에게 기도하는데, 이는 신과 영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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